- 해체계획서에는 지하 유류탱크 상부를 먼저 해체하고 되메운 뒤 굴착기가 올라오는 순서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유소 탱크탑은 수십 톤 탱크로리가 상시 통행하도록 설계된 구조라, 되메운 지반 위로 장비가 다니는 쪽이 오히려 전도·침하 위험이 컸습니다.
- 감리 판단도 「바꾸는 쪽이 맞다」였지만 감리가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해체계획서 변경은 계획서를 쓴 기술사·구조기술사 확인 → 시공사 협의공문 → 감리 검토 의견 회신 순으로 밟았습니다.
- 시행령은 「해체작업의 순서」를 해체계획서 변경 대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순서를 건드릴 때는 허가권자에게 변경허가·변경신고 대상인지부터 확인하십시오.

지난 편에서
3화에서는 소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 작업을 하지 않아도 배경소음이 60데시벨인 대로변 현장에서, 6월 8일 에어방음벽을 세우고 감리 명의 공문을 보내면서 그 국면이 일단락됐습니다.
6월 9일, 오전에 남은 고철을 정리해 반출하고 오후에 슬래브 절단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이날 시작된 순서는 해체계획서에 적힌 순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편은 해체계획서 변경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계획서대로 하는 쪽이 더 위험했던 순서 이야기입니다.
해체계획서에는 이 순서로 적혀 있었습니다
이 현장은 경기도에 있는 주유소 해체공사입니다. 땅속에 유류탱크가 4기 묻혀 있었습니다.
해체계획서 126쪽에 순서가 적혀 있었습니다. 지하 유류탱크 상부 슬래브를 먼저 해체해 반출하고, 되메우기를 한 다음, 그 위로 굴착기가 들어와 지상부(캐노피와 사무동)를 해체하는 순서였습니다.
상식적인 순서입니다. 일반 건축물이라면 이게 맞습니다. 지하층 상부 슬래브 위로 수십 톤짜리 장비가 올라타는 것은 위험하니, 지하를 먼저 처리하거나 보강한 뒤에 지상을 깨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 현장에서는 계획서대로 하는 쪽이 더 위험했습니다. 해체계획서 변경을 검토하게 된 지점이 여기입니다.
주유소 탱크탑은 그 하중을 예정하고 지어진 구조입니다
압쇄해체 착수 직전, 단장이 계획서와 현장이 어긋나는 지점을 짚어 올렸습니다.
두 가지가 겹칩니다. 하나, 탱크탑 구간은 그 하중을 이미 예정하고 지어졌습니다. 주유소 바닥은 탱크로리가 매일 드나드는 자리입니다. 둘, 되메운 지반은 아무것도 예정하지 않습니다. 다짐이 덜 된 흙 위에서 장비가 붐을 뻗으면 전도와 침하 쪽이 훨씬 현실적인 위험이 됩니다.
그래서 감리 판단도 「순서를 바꾸는 쪽이 맞다」였습니다.
판단이 같아도 감리가 순서를 바꿔 줄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이 편의 본론입니다. 판단이 같다고 감리가 도장을 찍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해체계획서 변경은 감리가 결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해체작업의 순서는 감리가 확인해야 하는 법정 업무입니다. 조문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해체공사감리자는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1. 해체작업순서, 해체공법 등을 정한 제30조제3항에 따른 해체계획서(제30조의3제1항에 따른 변경허가 또는 변경신고에 따라 해체계획서의 내용이 변경된 경우에는 그 변경된 해체계획서를 말한다)에 맞게 공사하는지 여부의 확인
계획서에 적힌 순서대로 하는지 확인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확인하는 사람이 그 순서를 바꿔 줄 수는 없습니다. 감리가 현장에서 「그게 더 안전하니 그렇게 하시죠」라고 말하는 순간, 사고가 나면 그 판단의 주인이 감리가 됩니다.
해체계획서 변경, 시행령이 대상으로 못 박아 둔 항목입니다
게다가 해체작업의 순서는 시행령이 해체계획서 변경 대상으로 콕 집어 열거해 둔 항목입니다.
①법 제30조의3제1항 전단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이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말한다. 1. 해체공법 2. 해체작업의 순서 3. 해체하는 부분 및 면적 4. 해체장비의 종류 5. 해체 대상 건축물의 석면 함유 여부 6. 해체공사 현장의 안전관리대책
이 건에서 바뀐 것은 두 공정의 선후뿐입니다. 해체공법도, 투입 장비도, 해체 범위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래도 순서를 건드릴 때는 변경허가·변경신고 대상인지부터 허가권자에게 확인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어디까지를 해체계획서 변경으로 볼지는 현장마다 판단이 갈립니다. 확인해 두면 나중에 다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해체계획서 변경이 걸린 순간에는 감리 판단이 아니라 절차부터 밟습니다. 저희가 이 건에서 실제로 밟은 순서입니다.
| 순서 | 한 일 |
|---|---|
| ① | 시공사에 정식 협의공문을 보내도록 요구 — 구두 협의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
| ② | 계획서를 작성한 기술사와 구조기술사에게 확인을 받게 함 |
| ③ | 기존 해체계획서 작성자로부터 확인서류를 별도로 받게 함 |
| ④ | 시공사 명의 협의공문 수신 → 감리가 「해체순서 변경에 대한 검토 의견」으로 회신 |
공문이 들어온 것이 5월 29일, 감리 회신을 보낸 것이 6월 1일입니다. 압쇄장비가 들어오기 전에 종이가 먼저 오갔습니다.
이때, 감리는
해체계획서 변경 앞에서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
하나. 「어느 쪽이 안전한가」와 「누가 정하는가」를 분리합니다. 감리가 답을 알고 있어도 계획서를 고칠 권한은 감리에게 없습니다. 아는 것과 정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둘. 계획서를 쓴 사람에게 되돌립니다. 계획서를 작성한 기술사와 구조기술사에게 「이렇게 바꿔도 안전한가」를 확인받게 합니다. 계획서의 주인은 계획서를 쓴 사람입니다.
셋. 그 확인을 공문으로 받게 하고, 검토 의견으로 회신합니다. 시공사가 감리에게 정식 협의공문을 보내고, 감리가 검토 의견으로 답합니다. 말로 끝난 합의는 사고 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넷. 특수구조는 「원래 무엇을 예정하고 지어졌는지」부터 확인합니다. 주유소 탱크탑, 공장 중량물 기초, 차량 램프처럼 애초에 큰 하중을 받도록 설계된 구간이 있습니다. 일반 건축물 상식으로만 판단하면 오히려 위험한 쪽을 고르게 됩니다.
다섯. 바뀐 순서가 다음 공정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봅니다. 지상부를 먼저 깨면 탱크 반출이 뒤로 밀리고, 반출 뒤에는 되메우기와 지반 고르기가 따라옵니다. 장비 이동과 작업자 추락 방지를 위해 지반을 고르는 일까지가 이 해체계획서 변경의 뒷단입니다.
여섯. 기록은 매일 남깁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⑤해체공사감리자는 허가권자 등이 건축물의 해체가 해체계획서에 따라 적정하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해체 작업 시에는 해당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 대한 사진 및 동영상(촬영일자가 표시된 사진 및 동영상을 말한다)을 촬영하고 보관하여야 한다. 1. 필수확인점… 2. 해체공사감리자가 주요한 해체라고 판단하는 해체
⑥해체공사감리자는 그날 수행한 해체작업에 관하여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항을 제7조에 따른 건축물 생애이력 정보체계에 매일 등록하여야 한다.
이 현장은 CCTV를 24시간 녹화하고 있었습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 촬영일자가 찍힌 화면만큼 조용한 증거가 없습니다.
6월 11~12일 — 이중슬래브 아래, 4만 리터 탱크가 있었습니다
해체계획서 변경 절차가 끝난 뒤의 현장입니다. 바뀐 순서대로 지상부를 먼저 정리하고, 6월 11일 유류탱크 상부 슬래브 압쇄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걸렸습니다. 상부 슬래브가 이중슬래브였습니다. 단장의 표현으로는 「압쇄 진행이 상당히 더딜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였습니다.
6월 12일, 탱크 4기 중 1기를 꺼냈습니다. 숫자는 이렇습니다.
| 항목 | 값 |
|---|---|
| 탱크 용량 | 4만 리터급 · 4기 |
| 직경 | 2.7 ~ 3미터 |
| 빈 탱크 1기 무게 | 약 5톤 |
| 반출 방법 | 크레인 없이 굴착기로 찍어 올려 반출 |
| 이번 주 반출 | 4기 중 2기 — 반출 후 되메우기 |
크레인을 쓰지 않았습니다. 빈 탱크가 5톤이니 굴착기 작업 반경 안에서 처리가 됩니다. 다만 이런 인양은 탱크가 완전히 비어 있고 세정·가스 제거가 끝났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합니다.
탱크를 빼낸 자리는 다시 되메웁니다. 그리고 지반을 고릅니다. 장비가 다시 지나가야 하고 작업자가 빠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6월 15일에는 철 부재와 콘크리트를 분리하면서 현장에 하절기 무더위쉼터를 설치했습니다.
가시설 도면 한 줄이 해체 순서 하나를 만듭니다. 흙막이와 해체를 따로 보면 이런 것이 현장에서 부딪칩니다.
같은 주에 인접 주택 쪽 요구로 공정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경계부 바닥 포장을 컷팅기로 먼저 절단해 구조적으로 끊어 놓은 뒤 바닥 철거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진동 전달을 줄이려는 조치입니다. 단장의 평은 솔직했습니다. 「효과가 과연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요구가 있었고 조치를 했다는 기록은 남습니다.
공정표에 없는데, 없으면 공사를 못 여는 것 하나
해체계획서 변경만 챙기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6월 9일 본부에서 확인 사항이 하나 내려왔습니다. 흙막이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안전점검수행기관이 지정되어 있는가.
확인해 보니 지정 신청은 착공 때 이미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지정이 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주무관 말로는 「업체들이 잘 들어오려고 하지 않아서」였습니다.
정기안전점검을 실시할 기관은 시공자가 마음대로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발주자(발주청이 아니면 인·허가기관의 장)가 명부에서 지정합니다.
③건설사업자와 주택건설등록업자는 건설기술 진흥법 제62조제4항 후단에 따른 안전점검을 실시하려는 경우에는 발주자에게 안전점검 수행기관의 지정을 요청해야 한다.
④제3항에 따라 안전점검 수행기관의 지정 요청을 받은 발주자는 제2항에 따라 작성ㆍ관리 중인 명부에서 안전점검 수행기관을 지정하고, 이를 건설사업자 또는 주택건설등록업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그래서 감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확인하고 재촉하는 것까지입니다. 본부의 정리는 이랬습니다. 「흙막이공사에 지장 없이 진행하고 싶으면 빨리 지정받으라고 시공사가 지자체에 요청하는 것이 맞다.」
6월 16일 지정이 완료됐습니다. 제기한 지 일주일 만입니다. 공정표에는 한 줄도 없지만, 이게 없으면 흙막이를 열 수 없습니다.
「그 건설공사를 발주ㆍ설계ㆍ시공ㆍ감리 또는 건설사업관리를 수행하는 자의 계열회사인 건설안전점검기관에 의뢰해서는 안 된다」(건설기술 진흥법 시행령 제100조 제3항)
그래서 감리는 지정이 됐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에 섭니다. 그게 이 국면에서 감리의 몫입니다.
그리고 남은 것
6월 16일까지 해체 잔재물을 정리해 반출했습니다. 이어지는 계획은 17일 남은 탱크 2기 분리 반출, 18일 되메우기와 토양오염조사 준비, 19일 대지 전체 토양오염조사였습니다.
계획서를 이만큼 들여다봤습니다. 순서 하나를 두고 해체계획서 변경 절차를 밟았고, 공문이 오갔고, 확인서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6월 17일 아침, 계획서에 아예 없던 것이 땅속에서 나옵니다. 기존 준공도서상 지하가 없다고 본 사무동의 1층 슬래브를 뜯었더니 그 아래에 콘크리트 지하구조물이 있었습니다. 흙막이 범위가 늘어난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해체계획서 변경, 현장에서는 이렇게 갈립니다
계획서와 현장이 어긋나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해체계획서 변경이 필요해진 다음에 무엇을 하느냐에서 갈립니다.
| 할 것 | 왜 |
|---|---|
| 바꾸는 판단과 정하는 권한을 나눈다 | 감리는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판단이 맞아도 권한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
| 계획서 작성 기술사·구조기술사 확인을 받게 한다 | 계획서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책임이 감리에게 옮겨 옵니다 |
| 시공사가 협의공문을 보내게 하고 검토 의견으로 회신한다 | 구두 협의는 사고 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
| 변경허가·변경신고 대상인지 허가권자에게 확인한다 | 시행령이 「해체작업의 순서」를 변경 대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
| 특수구조는 원래 설계하중부터 확인한다 | 일반 건축물 상식으로 판단하면 위험한 쪽을 고르게 됩니다 |
| 흙막이 착공 전 안전점검수행기관 지정을 확인한다 | 공정표에 없지만 없으면 공사를 열 수 없습니다 |
덧붙이면 이 현장의 해체계획서도 저희가 쓴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감리자로 지정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편의 이야기가 성립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감리일지 ⑤] 해체공사 지하매설물 발견에 있습니다 — 도면에 없던 지하구조물이 나오자 흙막이 범위가 늘어났고, 변경신고냐 재심의냐로 갈렸습니다.
계획서를 쓴 곳이 감리를 맡을 수 있는지는 해체공사감리자 지정에 조건과 한계를 정리해 두었습니다.
저희는 해체계획서를 직접 작성하고 검토하는 건축구조기술사 사무소이자 안전진단전문기관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이 작성한 계획서를 들고 현장에 서도 어긋나는 지점이 먼저 보입니다. 해체계획서 작성·검토와 해체감리를 함께 맡고 있습니다. 공사개요와 도면을 보내주시면 상담이 훨씬 빠릅니다.
- 건축물관리법 제32조(해체공사감리자의 업무 등) — 국가법령정보센터
- 건축물관리법 제30조의3(건축물 해체의 허가 또는 신고 사항의 변경) — 국가법령정보센터
- 건축물관리법 시행령 제21조의2(변경허가 또는 변경신고 사항) — 국가법령정보센터
- 건설기술 진흥법 시행령 제100조의2(안전점검 대상 및 수행기관 지정 방법 등) — 국가법령정보센터
- [감리일지 ①] 해체공사 착공신고, 막고 있던 건 서류가 아니었습니다
- [감리일지 ②] 해체공사 민원, 감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습니다
- [감리일지 ③] 해체공사 소음, 아무 작업을 안 해도 60데시벨인 현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