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일지 ①] 해체공사 착공신고, 막고 있던 건 서류가 아니었습니다

이선빈이선빈 · 으뜸안전기술 대표이사“우리가 안전한 현장을 만든다”
이 글의 핵심
  • 해체 허가가 나도 해체공사 착공신고가 막히는 일이 있습니다. 이 현장은 서류가 아니라 민원이었습니다.
  • 주무관이 민원 상황을 먼저 확인하려 했고, 합의가 되고 나서야 해체공사 착공신고가 처리됐습니다.
  • 합의문 한 줄(토양오염조사)이 담장 해체와 인접 상가 간판구조물 보강까지 끌고 왔습니다.
해체공사 착공신고 직후, 블록담장을 뜯기 전에 옆 상가 간판구조물을 보강하는 작업
담장을 뜯기 전에 간판구조물부터 보강했습니다. 얼굴과 차량, 인접 업소 표기는 가렸습니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올해 5월부터 저희가 해체감리를 맡고 있는 현장이 하나 있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주유소 해체공사입니다.

이 연재는 그 현장의 기록입니다. 해체공사 착공신고 절차를 설명하는 글이 아닙니다. 감리가 현장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날짜순으로 그냥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공사를 하는 건 시공사입니다. 감리는 공사를 하지 않습니다. 감리가 하는 일은 시공사와 민원인과 인허가 사이에서 공사가 멈추지 않게 만드는 것이더군요.

이 글을 읽는 방법
현장에 있던 사람은 저희 감리 단장입니다. 이 글은 그 보고를 받은 쪽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보니」가 아니라 「단장이 이렇게 보고했습니다」로 씁니다. 현장·업체·사람 이름은 전부 뺐습니다.

그리고 하나 밝혀 둡니다. 이 현장의 해체계획서는 저희가 쓴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해체감리자로 지정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연재에 나오는 판단은 전부 남이 쓴 계획서를 들고 현장에 선 쪽의 판단입니다.

5월 19일 — 해체공사 착공신고가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해체 허가가 났는데도 해체공사 착공신고가 안 나가는 일이 있습니다. 감리 계약은 끝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체공사 착공신고가 안 나가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때는 서류가 덜 갖춰진 줄 알았습니다. 해체계획서에 빠진 게 있거나, 가시설 구조검토가 안 붙었거나 하는 흔한 이유들 말입니다.

이번엔 아니었습니다. 가설울타리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접한 단독주택에서 민원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단장이 올린 보고
「아직 민원문제 등으로 가설울타리는 설치 전이고, 주무관이 착공신고 수리하기 전에 현장 상황을 확인하고 감리자와 회의하기 위해 오는 거라고 하네요.」

서류는 다 준비돼 있었습니다. 막고 있던 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류가 아니었습니다

해체공사 착공신고는 관할 구청에 하는 행정 절차입니다. 서류가 맞으면 처리됩니다. 그런데 이 현장에서는 주무관이 민원 상황을 먼저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서류가 맞는지가 아니라, 이 공사가 시작되면 민원이 어떻게 될지를 본 겁니다.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착공 직후에 민원이 터져 공사가 중지되면 그 뒷감당은 결국 구청도 같이 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이 현장의 해체공사 착공신고는 서류의 문제가 아니라 합의의 문제였습니다. 합의가 되어야 신고가 나가는 구조였습니다.

5월 20일 — 현장에서 셋이 만났습니다

이날 관할 구청 주무관, 시공사 현장소장, 그리고 저희 감리 단장이 현장에서 만났습니다. 논의의 초점은 하나였습니다. 인접 주택에 사는 사람이 정확히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가.

같은 날 오후, 시공사 본사가 민원인과 통화해 요구사항을 확인했습니다. 걱정의 실체는 오염이었습니다. 주유소 부지 옆에 산다는 것 자체에 대한 불안이 있었던 겁니다.

1차 합의 내용
인접 주택 마당의 토양오염조사를 실시한다. 오염이 확인되면 그에 대한 보상을 진행한다. — 이 내용이 주무관에게 전달됐고, 다음 날인 5월 21일 착공신고가 처리됐습니다.

조건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조사 장비를 주택 마당까지 들이려면 경계 담장 일부를 뜯어야 했습니다. 이 부분을 장비 없이 인력으로 조심스럽게 선해체하는 데 민원인과 시공사와 주무관이 모두 동의했습니다.

이때, 감리는

저 나흘 동안 저희가 실제로 한 일은 네 가지였습니다.

하나. 착공이 늦는 진짜 이유부터 갈랐습니다. 서류를 다시 뒤지는 대신 현장에 나가 상황을 봤습니다. 원인이 서류에 있는지 사람에 있는지를 먼저 갈라야 그다음에 할 일이 정해집니다. 서류 문제인 줄 알고 계획서만 계속 손보고 있었으면 두 주는 더 걸렸을 겁니다.

둘. 합의문이 공사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읽었습니다. 합의문에는 「토양오염조사를 한다」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이걸 공사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합의문에 적힌 것공사가 실제로 해야 하는 것
인접 주택 마당의 토양오염조사를 실시한다조사 장비가 그 마당까지 들어가야 한다
(장비 진입)경계 블록담장 일부를 해체해야 한다
(담장 해체)담장에 의지하고 있던 옆 상가 간판구조물이 혼자 서야 한다
(간판 자립)담장을 뜯기 전에 간판구조물을 보강해야 한다
블록담장에 기대 있던 옆 상가 간판구조물이, 담장을 해체하면 혼자 서야 하므로 담장 해체 전에 보강 프레임을 설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해옆 상가 간판담장에 기대 있음담장을 뜯기 «전»담장 해체옆 상가 간판보강 프레임담장을 뜯은 «뒤»
합의문에는 「토양오염조사를 한다」 한 줄이지만, 그 줄이 간판구조물 보강까지 끌고 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5월 22일, 담장을 뜯기 전에 간판구조물부터 보강해 자립시켰습니다. 합의는 민원인과 시공사가 했지만, 그 합의대로 하면 무엇이 위험해지는지 확인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건 감리 몫이더군요.

셋. 감리일지 개시일을 주무관과 맞춰 뒀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감리일지가 언제부터 시작되는지는 나중에 감리 대가 정산의 기준이 되고, 행정 대응이 필요할 때 「우리가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가」의 증거가 됩니다. 이 현장은 착공신고일이 아니라 그 전날인 5월 20일부터 쓰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감리가 실제로 관여하기 시작한 날이 그날이었으니까요.

넷. 손대기 전 상태를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나중에 쓰려고 한 게 아니라 습관입니다. 가설울타리 치기 전 경계부, 담장, 인접 상가 간판, 인접 주택 쪽 수목까지 찍어 뒀습니다. 이 사진들은 5월 28일에 쓰이게 됩니다.

5월 22일 — 현장이 열렸습니다

해체공사 착공신고가 처리되면서 그제야 현장다운 모습이 갖춰졌습니다. 해체현장 안내표지판이 서고, 이동식 컨테이너 현장사무실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감리는 이때부터 현장에 상주합니다.

그리고 같은 날, 위에서 말씀드린 간판구조물 보강이 진행됐습니다. 담장은 그다음 주에 인력으로 선해체하기로 했고요.

그리고 남은 것

이렇게 1화는 잘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민원은 합의됐고, 해체공사 착공신고는 처리됐고, 현장은 열렸습니다.

다만 5월 22일 단장의 마지막 보고는 이후 공사 일정이었습니다. 23일 석면해체, 26~27일 인접지 방음벽과 담장 해체, 28일 인접 주택 토양오염조사와 가설울타리 설치. 착공을 마쳤다는 말 대신 다음 주에 붙일 공정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5월 28일, 그 합의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담장을 뜯고 가설울타리를 세우던 날, 합의했던 민원인이 수목 가지치기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 가지치기는 민원인이 직접 부른 조사기관 장비를 넣으려고 한 것이었는데도요. 그러더니 감리 단장의 명함을 가져갔습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면서요. 2화 — 해체공사 민원, 감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습니다에서 이어가겠습니다.

허가는 났는데 착공을 못 하고 계신다면

해체공사 착공신고가 막혔을 때 저희가 이 나흘에서 배운 순서는 이렇습니다.

확인할 것
막고 있는 게 서류인지 사람인지부터 가른다둘은 해결 방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민원 합의 내용을 공사 언어로 번역한다「조사를 한다」 뒤에 장비 진입·담장 해체·인접 구조물 보강이 줄줄이 딸려 옵니다
착공 전 사진은 합의보다 먼저 찍는다합의가 깨졌을 때 남는 건 사진뿐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과 하지 않는 일
저희는 해체계획서를 쓰고 검토하고, 해체감리를 맡습니다. 토양오염조사와 석면 해체, 실제 해체 시공, 민원 보상 협상은 각각 다른 주체의 몫입니다. 다만 그 일들이 해체 순서와 안전조치에 걸리는 부분은 감리가 확인하고 감독합니다. 해체계획서대로 시공되는지 보고, 어긋나면 시정을 요구하고, 필요하면 작업 중지를 요청합니다.

덧붙이면 이 현장의 해체계획서도 저희가 쓴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감리자로 지정받았습니다.
건축구조기술사사무소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안전진단전문기관해체감리업
해체감리는 계획서를 볼 줄 아는 곳에 맡기십시오

저희는 해체계획서를 직접 쓰고 검토하는 건축구조기술사 사무소이자 안전진단전문기관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이 작성한 계획서를 들고 현장에 서도 어긋나는 지점이 먼저 보입니다. 해체계획서 작성·검토와 해체감리를 함께 맡고 있습니다. 공사개요와 도면을 보내주시면 상담이 훨씬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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